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은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정점이자, 현대 모더니즘 소설의 문을 연 거대한 걸작'이라고 일컫지만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정교하게 제작된 고품격 고구마 서사시이기도 하다. 1840년부터 1867년까지의 파리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시골 출신 훈남 청년 프레데리크 모로가 파리로 상경해 야망, 연애, 정치적 혼란 속에서 훌륭하게 자빠지고 몰락하는 과정을 정교하게 그려낸다. 주인공 프레데리크는 연상의 유부녀 아르누 부인을 평생 최애로 모시며 짝사랑하는 와중에도, 돈 많은 미망인이나 화려한 기생 사이를 바쁘게 양다리 걸치며 꼴값을 떤다. 그리고 예술가, 혁명가, 투기꾼 등 파리의 각종 속물들과 어울리며 호기롭게 시도하는 사업마다 족족 말아먹고, 결국 그 어떤 사랑도, 야망도 결실을 보지 못한 채 늙어가며 "아 우리집에 금송아지 있었지" 같은 소리나 중얼거리는 결말을 맞이한다. <감정교육>의 가장 큰 문학사적 의의는 시련을 극복하고 어엿한 어른이 되는 기존 교양소설의 공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주인공이 완벽하게 '노답·노성장'으로 일관하는 '성장 없는 교양소설''을 완성했다는 점이라 하겠다ㅋ 제목인 '감정교육' 역시 "사랑을 통해 성숙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감정이 어떻게 무기력하게 마모되고 낭만적 환상이 현실이라는 팩트 폭격 앞에 박살 나는가"를 알려주는 역설적이고 서늘한 튜토리얼이랄까... 더욱이 플로베르는 프레데리크의 찌질한 낭만적 방황을 1848년 2월 혁명과 쿠데타라는 당대 프랑스의 대혼란과 완벽하게 병렬시킨다. 청년들이 외치던 거창한 혁명 공약이 결국 정치가들의 배신과 속물주의 속에서 헛소리로 끝났듯, 프레데리크의 사랑과 야망 역시 지저분한 타협 속에서 허무하게 스러져 가게 말이다. 즉, 거창한 꿈을 품었다가 허탈하게 무너지는 개인과 역사의 콜라보를 그려낸 씁쓸한 환멸의 파노라마인 셈이다. 여기서 플로베르의 또 다른 대작 <보바리 부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플로베르가 '환멸'을 다루는 재주란 정말....ㅋㅋ 두 소설의 공통점은 드라마나 소설을 너무 많이 봐서 눈만 높아진 주인공이 초라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자멸한다는 점인데, 엠마 보바리가 삼류 연애소설에 빠져 시골 의사 남편을 무시하고 로맨스를 찾아 탈출을 시도하듯, 프레데리크 역시 낭만적 성공을 꿈꾸며 파리를 기웃거리지만 감정과 통장 잔고만 소모할 뿐이다. 둘 다 실행력은 없으면서 이상만 높은 인물들이라 잔인한 플로베르는 이들에게 어떠한 동정표나 도덕적 쉴드도 쳐주지 않고, 팝콘을 씹듯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들의 허영심을 폭로한다. 차이라면 두 작품의 '환멸의 규모'랄까. <보바리 부인>이 좁혀진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엠마라는 개인이 사치와 불륜 끝에 사채 빚에 짓눌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매운맛의 극적 비극이라면, <감정교육>은 대도시 파리 전체를 무대로 온갖 속물들이 얽히고 설키며 세월의 흐름 속에 주인공의 열정이 잔잔하게 마모되어 가는 순한맛의 미지근한 허무를 보여준다. (과연 이게 순한맛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비유하자면 <보바리 부인>은 한 개인의 망상과 파멸을 정교하게 해부한 '현미경'이고, <감정교육>은 한 세대 전체의 찌질함과 역사적 혼란을 널찍하게 담아낸 '망원경'이라 할 수 있을 듯. 출간 당시 <감정교육>은 "주인공이 너무 답답하다", "줄거리가 산만해서 답답해 죽겠다"는 독자들의 야유 속에 묻혔다고 하는데, 훗날 마르셀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 프란츠 카프카 같은 현대 문학의 거장들에게 "삶의 무의미함과 찌질함을 이토록 아름답게 그려내다니!"라는 찬사를 받으며 현대 모더니즘 문학의 기틀을 다진 위대한 걸작으로 남았다고 한다. (혹시 동족상잔일까....ㅋㅋ) 심지어 그 중 프루스트는 말했단다. "<감정교육>의 프레데릭은 바로 나" 라고ㅋ 여튼 거창한 야망과 낭만적 환상을 품고 파리에 상경한 청춘이 현실의 속물주의와 역사적 혼란 속에서 완벽하게 무기력해져 가는 과정을 서늘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문학사상 가장 고품격인 '성장 없는' '환멸'의 서사시! 읽어보시라. 진짜 너무 재밌다. 소설의 묘미란 정말...ㅋ
안지님
보면 잠 못 드는 이런 식의 자극적인 책들을 간간히 봐왔는데 나 같은 경우 호불호였다. 개인적인 취향이 다르고, 나 역시 내가 보고픈 책들 위주로 보고, 실제로 보고픈 내용의 책인 줄 알았는데 그러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무엇보다 나는 책을 보다보면 잠이 솔솔 잘 오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다치고 일단 “잠 못 드는 OOO” 이런 식의 책이름이 나오게 되면, 나 같은 경우 책 내용이 어떠한 것일지 목차를 보게 된다. 목차를 보니까 숏폼에 대해서 나오는데, 내가 유튜브 쇼츠 중독에 가까워서, 숏폼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책은 크게 4장으로 되어 있는데, 숏폼 중독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강해서 해당 부분부터 보게 되었다. 보니까 알 수 없는 숏폼에 빠지는 이유를 대략 알 수 있었다. 나 같은 경우 20 여 년 전부터 어떻게 하면 공부에 빠질 수 있는지, 어떤 중독에 빠지게 되더라도 그런 중독성을 공부하는데 적용시켜서 써먹을 수 있는지 이런 고민들이 참 많았다. 엄청난 부귀영화까지 바라는 건 아니지만, 공부를 잘 해야 돈을 더 잘 벌 수 있고, 부모님께 그만큼 잘 해드릴 수 있고 평화로운 가정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쇼츠중독에 빠질 때마다 공부할 때마다 이런 중독성이 나타나고 공부에 푹 빠졌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품었는데, 쇼츠중독에 빠지는 원리처럼 조금이라도 변형해서 써먹어보려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1장에는 잠(수면) 편이 있는데, 이 부분도 그런대로 볼만했다. 사실 나는 잠 편을 그렇게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책 속에 과거에 있었던 실험사례를 보면서 잠을 잘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네스북에 오르려고 젊었을 때 제대로 잠을 안 잤던 것이, 세월이 흘러서 뒤늦게 불면증인 후유증으로 나올 수도 있다는 건 충격이기도 했다. 제대로 잠 안 잔 게 훗날 휴유증인지 아닌지 명확한 원인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좀 있어 보이지만, 잠을 잘 자야겠다는 생각은 더 들었다. 조카가 밤새서 게임하기도 하는데, 이런 얘기도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면 잠 못 들 정도인지 아닌지 위험한 인문학인지 아닌지는 나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큰 기대를 안 가지고 궁금해지는데 한 번 봐 볼까 하면서 이 책을 봐서 그런지 몰라도, 의외로 내용 속으로 빠져드는 그런 부분들은 간간히 있었다. 나 같은 어떤 사례를 통해서 유익하고 교훈적인 내용이 담긴 책을 선호하는 편인데, 이 책에서 그런 내용들이 담겨 있어서 이런 부분들이 마음에 들었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았고, 제 나름대로 솔직하게 쓴 주관적인 평입니다.>
책이좋아님
유진 피터슨 지음, 김순현 외 옮김, 김회권 외 감수

김재우 지음

세이노(SayNo)

사라 영 지음, 이지영 옮김

앤디 위어